기사· 칼럼

(펌)국제곡물유통업 진출, 어렵지 않다.

까만마구 2010. 6. 29. 18:16

 

 

 

주) 지비아이 회장 윤화숙

 

 

1944년 크리스마스이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중략 .............. 첫 번째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어머니는 곧 촛불을 껐다. 내가 문 쪽으로 가는데 어머니가 한 발 앞 서 문을 열었다. 눈 쌓인 겨울나무들을 배경으로 철모를 쓴 병사들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눈 위에 누워 있는 세 번째 사나이를 가리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어머니에게 말 했다. 어머니와 나는 거의 동시에 그들이 미군임을 알아챘다........... 중략 .................... 어머니를 도와 식탁을 차리고 있을 때, 문 쪽에서 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또 길을 잃은 미군이겠지 생각하며 나는 주저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 밖에는 5년이나 끈 전쟁동안 내 눈에 익은 군복을 입은 군인 넷이 서 있었다. "독일 군인이다!" ................. 중략 .................... "무기를 이 장작더미에 놔요.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먹어치우기 전에 어서 서둘러요!" 어머니의 말에 독일군들은 마치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고분고분 문 안에 있는 장작더미 위에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뒤돌아서서 미군에게도 프랑스 말로 몇 마디 했다. 그는 다시 영어로 동료에게 어머니의 말을 전하고 나서 자기들의 무기를 어머니에게 건네주었다. ....................... 중략 .................. 우리 집에서의 그 사적 임시휴전은 다음 날 아침까지도 계속되었다. ................... 중략 ....................

 

이 이야기는 프리츠 빈켄(Fritz Vincken)이라는 한 독일인이 제이차세계대전 중에 겪은 일을 '리더스 다이제스트' 1973년 1월호에 기고한 체험수기의 일부이다. 필자가 굳이, 이를 글의 서두에 인용하는 이유는 적어도, ‘적과의 동침’에 관한 한, 서구인들이 우리 동양인들보다는 훨씬 더 유연한 사고를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알려주기 위함이다. 이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가 고착화되고 있는 세계적인 식량위기 국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해외농업개발보다는 국제곡물유통업 진출이 더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정부 및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필자의 이 같은 주장을 도외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에 대한 필요성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본다. 다만, 기라성 같은 기존의 곡물 메이저들이 턱 버티고 서 있는 그 시장으로 아무런 유무형의 인프라도 갖추지 못한 우리 업체가 맨손으로 끼어든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당하기나 하겠느냐는 의구심이 앞서서일 것이다. 즉, 실현성(feasibility) 측면에서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논리가 일견, 설득력 있게 들릴지도 모른다.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는 국제통상 현실 하에서, 자기 영역에 들어온 새끼 호랑이를 사나운 사자들이 그냥 둘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동종업계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그들이 적과의 동침에 익숙해져 있다. 다시 말해서, 사업 면에서, 경험이 일천하고 인. 물적 인프라도 갖추지 못한 상태라 하드라도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제안을 앞세워, 기존업체의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그들의 인프라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사업적 제휴를 할 수만 있다면 현 시점에서도 얼마든지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국제곡물유통업에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나 국내업체 공히, 그런 시도를 해 보기도 전에 아예 ‘그건 안 되는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해서 감히, 시도해 볼 엄두조차도 내지 않고 있다고 함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국내업체나 공공기업이 현지 기존 곡물 메이저의 도움을 얻어서 국제곡물 유통업에 진출하는 데에는 소위, 'Versus Trade'라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생각이다. Versus Trade란, 일종의 교환거래로, 곡물의 경우에는 선물과 현물을 일정한 베이시스 가격으로 맞바꾸는 거래를 말한다. 즉,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신생업체가 곡물 선물이나 선박 등을 미리 잡아놓고, 그 나머지 것들은 모두 이미 계약된 곡물 메이저에게 일임함으로써, 제삼자와는 그 곡물 메이저 대리점의 지위가 아닌, 독립적인 곡물유통업자로 거래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장. 보관. 운송 설비 등에 관한 인프라를 완벽하게 구비하지 못해도 사업을 영위하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유수 곡물 메이저와 신생업체 간의 경쟁력 차이가 바로, 메이저 레잇(Major Rate)에서 비롯된다고 했지만, 위와 같은 방식을 채택하면 둘 사이의 비용 차이가 거의 없어진다. 뿐만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는 많은 경우, 이미 메너리즘에 빠져있는 기존 곡물 메이저들보다도 오히려 유리한 조건 하에서 거래가 성립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선, 축적된 경험을 가지지 못한 사업 참여 초기에는 선물을 주요 곡물 메이저들보다 불리하게 잡을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이것은 분할 헤징(Stripe Hedging)을 하거나, 헤지 거레에서의 투기적인 요소를 가능한 한, 축소시킴으로써 어느 정도, 그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실패의 가능성이 축소되므로 머지않아 극복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분할 헤징이란, 필요한 물건을 한꺼번에 다 사거나 파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나누어서 여러 번 사고파는 방법으로, 투기수익을 올리는 데는 그리 유용하지 않지만 목표가격 관리 및 위험회피 수단으로서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설사, 그렇게 하여도 선물을 잘못 잡았을 때에는 후에 필요한 물량을 다시 잡는 방법으로 이미 고정시킨 가격을 사후에 보정할 수도 있다. 단, 이 경우에도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자칫, 투기거래(Speculating)의 위험으로 빠져들 위험이 있으므로 특히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헤지 거래이고 또 어디까지가 투기 거래인가? 이에 대해서는 획일적인 구분 기준이 없다. 다만, 당사자의 역량에 따라, 그 기준이 가변적이란 점만 유념하면 된다. 가령, 1990년대에 주요 곡물 메이저들의 선물거래 규모를 보면 대개, 현물의 60배 정도였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동종업계에 진출하는 기업이라면 그 규모를 현물의 20배 이내로 줄이더라도 투기 거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현물 대비 선물의 배율을 15배 이내로 한정을 했다. 그 정도면 초심자라도 거의 확실한 시점에 선물을 되팔거나, 되사거나 할 수 있어서 확보한 선물을 보다 더 유리한 가격으로 가져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 사업 초기에는 선임과 같은 수송비를 비싸게 잡을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역시, 수입자와 미리, 인도일에 대한 조건을 융통성 있게 결정함으로써, 기존 곡물 메이저보다 오히려, 더 유리한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운송요금이란 용선시장의 시황에 따라, 그 시세가 수시로 급변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 잡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언제 잡느냐’가 가격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곡물을 선임이 가장 싼 시기에 운송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내에 충분한 곡물저장 시설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경제 적인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개별 경제단위 측면에서도, 경제적. 재무적 타당성(ERR & FRR)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겠다.

 

지금까지 전개해 본 논리를 토대로 하여, 필자 나름으로, 우리나라의 중장기 식량도입 대책을 중요도와 우선순위에 입각, 열거해 본다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식량공사 설립, 소요기금 및 국내 저장시설 확충(또는 곡물클러스트 단지조성)

2. 복수 민간업체의 현지(미국 등) 국제곡물유통업체 설립 지원 및 육성

3. 곡물유통과 물류(Logistics) 부문의 현지 인. 물적 인프라 구축 및 경험 축적

4. 국내부존 농업자원 발굴 및 이용의 극대화

5. 해외 프란테이션 사업 활성화

6. 해외농업개발 사업 전개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두 번째로 열거한 ‘복수 민간업체의 현지(미국 등) 국제곡물유통업체 설립 지원 및 육성’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접근이 용이하고 사업위험 또한, 제일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업의 효과성은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곡물유통업이 하나의 유망사업으로 현지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영주체가 작은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제곡물시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거래, 그 자체가 성공과 실패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일시적인 단기성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기반을 조금씩 구축해 나간다는 마음가짐으로 길게 보고 나아가야 비로소, 더 큰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현장 실무자의 재량권도 가급적이면, 폭넓게 부여해야 한다. 가령, 2천만 달러의 선물을 잡았다고 했을 때 하루 중 가격변동 폭이 1백만 달러 내외이다. 즉, 실무자가 매 건당 하루에 그 정도를 잃고 버는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이 없어야 비로소, 재고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 그 재량권을 가진 사람을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 영국의 베어링은행이나 캘리포니아의 오렌지카운티가 파산한 것도 단 한 사람의 관리자가 선물시장에서 순간적인 판단과 선택을 잘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 선물거래에서 돈을 벌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런 생각이나 시도를 하게 되면 금방 투기거래의 위험에 빠지게 되어 소기의 안정적인 가격 확보의 주 목적이 왜곡되게 된다. 즉, 필요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그리고 목표가격으로 확보하는 데에 주안을 두어야 한다. 또, 국제곡물유통업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류(Logistics) 부문의 경험을 풍부하게 축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곡물을 효율적으로 운송하기 위한 인터모달(Intermodal)과 포워딩(Forwarding) , 용선을 신속하게 하기 위한 써드파티(Third Party) , 양륙과 선적을 위한 터미널엘리베이터(Terminal Elevator) 운용 등이 그것이다. 한시바삐, 적과의 동침을 끝내고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물류사업 분야로의 진출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찌 보면 아직도, 국제곡물유통업계는 철저히, 얼굴로 장사를 하는 분야라 할 수 있다. 물론, 거래방식은 이미 오래 전에 시스템화. 디지털 화 되었지만, 인관관계는 지극히 보수적인 아날로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회사를 중심으로, 복수의 곡물메이저와 신뢰할 수 있는 은행, 선물 중개사. 투자자문사. 정보제공사. 운송회사 및 선사, 생산자 및 로컬 딜러, 관련 공공기관, 협회와 단체 등, 무수한 외부 조직과 그 관계자가 포진해 있는데, 그들 모두와 하나 같이, 돈독한 인간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제대로 사업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설사,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접촉을 하는 경우라도, 평소에 서로 인간적인 교류를 이어가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경우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고 봄이 옳다. 특히, 그들은 사업을 하나의 치부의 수단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고 삶을 즐기는 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평소에 서로, 좋은 친구가 되지 않으면 막상, 거래를 하려 해도 마음먹은 대로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거래를 승낙하는 그 자체가 바로, 친구에게 주는 하나의 큰 선물인 것이다. 이는 특히, 신속한 업무처리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한 번 생각해 보라! 단 일 분이 멀다 하고 변동되는 시장 상황 하에서, 그에 맞게 신속히 대응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게 되는데, 언제 서류를 꾸미고 할 겨를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통상, 말로 거래를 하고 또 그것을 반드시 지키는 불문율이 있다. 말하자면, 동종업자들끼리 맺은 일종의 신사협정인 셈이다. 다만, 요즘은 쌍방이 전화 녹취를 해 두고 만일의 분쟁에 대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하루라도 빨리, 현지 국제곡물유통업계 종사자들에게 얼굴이 친숙한 한국인들을 보다 많이 양성해 두어야 한다.

 

지금, 22만 평방킬로미터의 좁은 한반도 내에는 무려, 1억 명에 가까운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그 중에서 약 1/4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다른 3/4은 보다 많은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를 원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반면에, 그 스스로는 적어도, 곡물의 시세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곡물을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을 이미, 구비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 곳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매력적인 소비지 시장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큰 시장을 두고서 우리가 마치, 소 닭 보듯 한다면 그것은 크나 큰 사업의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마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국가 식량안보 측면에서, 더 없이 중요한 분야를 전적으로, 남의 손에 맡기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나 기업은 서둘러, 국제곡물유통업에 곡물 메이저의 대리점인 아닌, 하나의 독립사업자로 참여를 해야 한다. 관련 인.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일 분이고 또, 그리 서두를 필요도 없는 사안이다. 정부가 현재 중점을 두고 있는 해외농업개발 시책은 일단, 뒤로 미루거나 축소하고 최우선적으로, 이 분야에 정책 중점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개별 기업체 역시, 자본회임기간이 수십 년이나 되는 해외농업개발보다는 국제곡물유통업 진출을 먼저 고려함이 더 현명한 경영판단일 것이다. 아울러, 차제에 해외생산 곡물을 국내에서 저장할 수 있는 식량비축기지 건설과 해외곡물을 국내에서 카운트 헤징(Count Hedging)할 수 있는 상품선물거래소 개설도 적극 추진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현재와 같이, 각종 자원이 고갈되거나 만성적으로 부족한 공급자 중심의 국제시장에서는, 그리고 우리같이 국제사회에서 국사. 외교적 취약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태의 자원빈국의 입장에서는, 그 수급을 지배하는 유통인과 시장 그 자체의 확보가 가장 효율적인 대처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