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지비아이 회장 윤화숙
혹, 미국에서 장기 거주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 곳의 전반적인 식료품 값이 우리나라보다 싸다는 점을 실감했을 것이다. 이는 미 정부 당국이 자국의 한계산업을 희생시켜 가면서 싼 상품을 수입하여 국민의 기초생활비를 낮추는 데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산 소에 대한 광우병 우려로 인해, 해외수출에 제약을 받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쇠고기 수출국이었던 미국이 실제로는 쇠고기 순수입국이었었다. 그 당시에 만약,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캐나다 등지의 값싼 쇠고기가 미국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미국 내의 모든 샌드위치 및 햄버거 가게가 문을 닫았을 것이고 아마도, 곧 바로 시민폭동이 야기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부국이자 세계 최대의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조차도 값비싼 고급육(Grain Fed Beef)은 해외로 반출하고, 싼 보통육(Grass Fed Beef)을 반입해서 이른바, 정크 푸드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는 햄버거나마 국민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배려를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한 나라가 식비를 비롯한 생필품의 가격을 낮추어서 서민생활을 안정시키는 일은 국가경제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곧, 전반적인 인금인상 요인을 억제시킴으로써 국내 제반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인의 1인 당 연평균 곡물소비량은 300 kg을 약간 상회하고 있다. 이 중에서, 곡물을 직접 식량으로 사용하는 양은 200 kg 미만이고, 그 나머지는 육류와 같은 전환된 형태의 식량이나 바이오 에너지와 같은 산업재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인구가 70억을 돌파하게 될 2010년의 세계 곡물수요는 21억 톤을 초과하게 된다. 반면, 세계 곡물 생산량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2011년 이후, 세계 곡물시장에서의 만성적 공급부족 현상은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선진 제국 국민들이 곡물 소비의 양이나 질을 현재보다 더 낮추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중진국의 국민들 또한, 엥겔지수가 높아져 삶의 전반적인 질이 하향될지언정, 기왕의 지방 및 탄수화물 중독에서 쉽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중국과 같은 신흥 산업국 주민들의 식생활도 틀림없이, 현재보다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같은 세계적인 식량부족 사태는 결국, 아프리카의 베넹과 니제르, 아시아의 방글라데시 등과 같이, 엥겔지수가 현재도 60%를 능가하는 세계의 최빈국 국민들이 지금보다 더 심히, 기아에 허덕이고 지금보다 더 많이, 아사하는 비극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비경제재에 속하는 공기는 부자나 빈자가 차별 없이 고루고루 나누어 마실 수 있지만, 경제재에 속하는 곡물을 돈 없는 빈지에까지 골고루 분배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제도나 장치가 꼭 있어야 하는 법인데 현재, 기금이 턱 없이 모자라 제 기능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세계식량계획(WFP)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국제기구가 없다.
물론, 이 같이, 세계 곡물 수급사정이 극도로 악화되면 식량부족국의 모든 유휴지나 한계농지는 거의 예외 없이, 모두 경작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 상황을 역전시킬 만큼 충분하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세계 곡물의 이월재고가 장기적으로 누적되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2011년 이후, 세계는 국가 간에 식량자원 확보 경합이 치열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곡물 시세도 크게 앙등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킹의 법칙에 따르면, 곡물이 10. 20. 30% 부족할 때마다 그 가격은 30. 80. 160%로 급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세계의 그 어떤 나라 국민도 감히, ‘정크 푸드... 운운’할 처지가 못 된다. 곡물 구매에서 제약을 받게 될 대다수 국민들이 보다 더 나은 음식보다는 보다 더 값싼 먹을거리를 구하기에 골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상단기간 동안은 돈이 없어서 곡물을 사지 못할지언정, 살 곡물이 없어서 못 사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유럽연합과 미국, 브라질과 캐나다, 호주 등과 같은 곡물 수출국에서는 자국 농수산물의 가격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1억 5천 톤 내외의 잉여농산물을 계속 국제 곡물시장으로 쏟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을 두고 볼 때, 국제 곡물시장에서는 앞으로도 ‘부족한 곡물을 여하히 확보하느냐’의 문제보다는 ‘필요한 곡물을 얼마나 싸게 구입하느냐’가 계속, 더 중요한 이슈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경제적으로 부족농산물을 확보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혹자는 해외농업개발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당국에서도 일찍이, 그러한 목적으로 수차례에 걸쳐, 남미 지역에 대규모 농업이민을 보낸 적이 있었다. 또, 어떤 대기업은 미국에 대규모 농장을 구입하여 직접 영농을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제5공화국 시절에는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가 남미와 오세아니아 주에 대규모 축산단지를 조성하려고도 했었고, 십수 년 전에는 어떤 유명 인사가 중심이 되어 중국의 oo평야를 개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실제, 실천에 옮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시도된 그 어떤 프로젝트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러한 모든 시도들이 소위, 상업적인 고려(Commercial Concern)를 무시한 채 추진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이는 곡물을 해외농업개발을 통해서 도입하는 방식이 결코,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국제 곡물 가격을 C&F 수입항 기준으로 검토해 봤을 때, 그 총액에서 차지하는 순수 품대는 그리 높지 않다. 더욱이, 철도나 내륙수운. 엘리베이터 및 터미널. 선박 등 곡물유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선진국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심지어, 미국 같이 그런 인프라가 잘 갖춰진 지역이라 할지라도 소위, 메이저 레이트(Major Rate)라는 싼 물류. 조작비를 적용받지 못할 경우, 가격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게 된다. 십수 년 전, 필자가 미국 현지에서 상업용 곡물(Commercial Grains)을 세계 유수 곡물 메이저를 통해서 수출했을 때는 베이시스(basis; 품대 이외의 총 유통마진)가 C&F 수입항 기준으로 해서 60%를 넘지 않았지만, 직접 시행한 특수곡물(Specialty Grains)의 경우에는 품대 자체가 상업용 곡물에 비해 월등히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베이시스의 비중이 70% 이상으로 늘어났었다. 또, 트럭에 의한 육로운송은 바지선에 의한 내륙수운에 비해 약 60배의 수송비가 더 들어간다. 그러므로 물류. 유통 인프라를 고려치 않고 무조건 생산비만 싼 곳을 입지로 선택했다간 자칫,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보관. 유통 과정에서의 손실과 부패. 변질 등의 문제 또한, 무시될 수 없는 고려사항 중의 하나이다. 결론적으로, 곡물의 생산비만 낮춘다고 해서, 곡물의 도입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혹자는 경제적인 논리를 떠나, 식량안보 차원에서 해외농업개발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는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먼저, 그 한계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어떤 나라가 자국 내의 식량수급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곡물의 국외반출을 제한한다고 했을 때, 엠바고가 내국인 또는 내국기업에게만 국한시킬 것이란 생각은 무척 순진한 착각이다. 그 어떤 국가든, 일단 그러한 조치를 내린다면, 곡물 자체가 자국의 국경선을 넘는 것을 규제할 것이지, 그 교역 주체를 따져가며 차별적으로 규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제까지 세계 각국에서 시행되었던 곡물의 국외반출 제한 사례들을 보아도 이는 분명하다. 또 당사국 간의 쌍무협상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할지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그것이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해외농업개발은 자본회임 기간이 통상, 30년을 상회하는데 반해, 정정이 불안한 제삼세계 국가들이 역사적으로, 그처럼 장기간 정권을 유지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설령, 정권이 그대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약정이 계속 준수되리라고 믿을 일은 못 된다. 이는 과거, 이집트에서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중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석유자원 국유화 과정을 통해서도 이미 교훈을 얻은 사안이기도 하다. 그리고 만약, 해외농업개발을 하게 될 경우에는 토지 및 관계시설 조성비, 단수 및 생산원가. 보관 및 물류 인프라구축 비용. 투자비 회수기간 등을 면밀히 따져 본 연후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재무적 타당성(즉, 투자비 회수, Financial Rate of Return)을 확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외농업개발을 일절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곡물도입 면에서, 국제시세보다 더 비싼 원가가 먹히는 해외농업개발은 결국, 국가 경제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낭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필자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당장 권장할 수 있는 해외농업개발 방식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프랜테이션(Plantation) 뿐이다. 현지에서는 이를 소위, ‘약탈농업’이라 하여 거세게 비판하고 있지만, 영농주체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효율성이 높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즉, 대상국의 정부나 유력자와 특정 곡물의 1년 단위 선도거래 계약을 체결하고, 세계 유수의 은행으로부터 확실한 환불보증(Pay-back Guarantee)을 받는 조건 하에서 선도금을 지급한 후, 소수의 커미셔너를 파견하여 전반적인 영농 및 물류조작을 지도. 감독토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농업기반 조성 등과 같은 위험스런 장기투자를 피하면서도, 가장 경제적으로 현지의 저가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에 필자가 현지의 한 유력자와 접촉하여 협의한 바에 의하면, 볼리비아 같은 남미 지역에서 참깨를 생산할 경우, 국제시세(900~1,000 달러/톤, C&F Import! country port)의 약 60% 수준에서 국내도입이 가능할 정도로 그 효율성이 있었다. 물론, 이것도 광작농업 품목에 속하는 밀. 옥수수. 대두 같은 주요 상업성 곡물에는 그 경제성을 기대할 수 없음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국가 경제적인 관점과 식량안보 차원에서 우리나라가 장기적이면서도 근본적으로 펼쳐 나가야 할 식량 정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누가 뭐래도, 국내의 생산기반을 최대한 확충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농지나 초지로 개발할 수 있는 산지와 해수면 등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해외농업개발에 드는 노력과 비용을 들인다면 아직도 광대한 면적의 경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아진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부족한 식량자급률을 충분할 만큼 끌어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함께, 또 다른 중기적인 식량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세계 유수의 곡물 메이저에 비견될 수 있는 식량공사를 신설하거나 민간기업의 설립. 운영을 지원. 육성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국제교역 대상 곡물을 장기 저장할 수 있는 대규모 저장시설을 국내에 건설. 운영하게 해야 한다. 곡물수급 상황이 아무리 급박해도 어떤 국가가 일단, 자국의 국경선을 통과한 곡물을 도로 자국 내로 환입시킬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또, 곡물의 물류. 조작비가 매우 비싸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 번 이동된 곡물이 도로 타국으로 환적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면 막대한 액수의 부가가치(저장보관료 등)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더 더욱 중요한 것은 품대와 선임이 가장 싼 때에 곡물을 국경선 내로 반입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경제적으로 곡물을 도입하는 효과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가령, 식량공사가 국내의 한 보세항구에 곡물전용 부두를 신설하고, 대규모 엘리베이터를 건설한 후, 연간 수십 만 톤 규모의 곡물을 보관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우리나라를 주 교역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여타 유수의 국제곡물 메이저들도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를 따르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렇게 되면 자연, 우리나라가 연간 도입해야 할 곡물의 대부분을 우리 국토 내에서 미리 확보하는 셈이 된다. 이 경우, 우리가 가장 먼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선. 현물 간의 베이시스 차이가 가장 큰 시점에 곡물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곡물의 베이시스는 크게, 보관료와 금융비용, 그리고 저장감모손 등에 의해 결정되고 있으므로 통상, 수확 직후가 제일 크고 인도일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작아진다. 그것이 곧, 우리나라가 얻게 될 부가가치인 동시에 무역수지 상의 수익이기도 한 것이다. 두 번째로는, 운송비용이 가장 쌀 때 터미널 수송이 가능해 진다. 특히, 바지레잇이나 선임 등은 그 자체가 경매시장에 상장되고 있을 만큼 시세 변동이 심하다. 그 같은 방법을 통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품대와 물류. 운송비용 상의 절약 분은 실로 엄청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우리 정부 당국은 곡물도입을 엄정한 국제입찰에 부하여 시행하고 있으므로 가장 합리적이고 저렴하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첫 째, 한국에서 입찰을 공시하는 그 자체가 국제 곡물 시세를 인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둘 째, 우리나라에서 도입일자와 도입물량을 결정하는 방식이 당해 곡물의 국내 수급상황을 고려하여 내리는 것이지, 현지의 곡물시세와 물류비용을 고려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 째, 도입 분의 상당량이 곡물시세가 이미 올라버린 단경기에 구매하는 것이지, 곡물이 가장 싼 생산시기에 구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곡물도입 방식은 그 것이 매년, 일정 물량 이상,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임시방편적인 방법으로, 그 때 그 때 필요한 시기에 임박하여 조달하고 있는 꼴이다. 이처럼, 일정량의 해외 곡물을 관세선 내로 도입하는 시기에 관계없이, 가장 적기라고 판단되는 시기에 일단, 우리 국경선 내로 반입시켜 두는 일이야 말로 매우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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