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칼럼

펌/인터넷의 두 얼굴

까만마구 2012. 1. 28. 22:33

간추리다' 표준어 등재 경위?

국립국어원·한글학회·교수님…그 어디서도 뾰족한 답 못 구해 울진 출신 엄마, 대구 친구에 전화"간추리다, 경상도 사투리였나?"

비틀즈, 우드스탁 왜 안 섰나
음악 관련 책이란 책 다 뒤졌다 레넌 마약탓? 멤버들 불화설?상황 추정만 되고, 알 수가 없다 인터넷 검색욕구 '부글부글'

인터넷의 두 얼굴
나이든 사람 뜻하는 '노털'의 어원시간 걸렸지만 자세하게 추적돼 인터넷 지식검색은 단 몇줄로 '끝'편리하지만 불충분한 정보 양산

↑ [조선일보]

↑ [조선일보]

美 위키피디아의 반란?
법안 반대 항의해 24시간 폐쇄 고교생들 트위터로 글 쏟아내 "내 숙제는 어떻게 하라고?" 인터넷 없는 생존법, 새 이슈로

2012년 현재 서울에 살면서 인터넷을 단 한 번도 뒤지지 않고 무엇이든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비용이 들까. 아날로그 방식만으론 끝내 알아낼 수 없는 정보도 있을까.

현재 조선일보 기획취재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학생 인턴기자 5명에게 각각 하나씩 과제를 줬다. 조건은 어떤 형식으로도 인터넷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이를테면 서점의 컴퓨터를 이용해 도서검색을 할 수도 없으며, 친구가 대신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알려줄 수도 없다. 과제는 다음과 같았다.

① 경상도 사투리인 '간추리다'가 표준어가 된 경위는 무엇인가.
② 비틀스는 왜 우드스탁 페스티벌 무대에 서지 않았는가.
③ 세종대왕이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 현대 의학용어로 설명하라.
④'노털'이란 단어의 어원에 대해 설명하라.
⑤ 서울 광화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일산 호수공원까지 가는 법에 대해 설명하라.


지난 25일 오후 3시에 과제를 부여해 이튿날 오전 10시를 최종 마감시각으로 정했다. 결과적으로 ①번과 ②번 과제는 마감시각 내에 해결되지 않았다. 인턴기자들은 도서관과 서점을 뒤지고 교수와 전문가를 찾아갔으며 가족과 친구까지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①'간추리다'가 표준어가 된 경위

(정상혁 인턴기자·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

114를 통해 국립국어원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상담실에 문의했으나 상담원은 "'간추리다'는 방언으로 등재돼 있지 않고 어원정보도 없다"고 답했다. 방언 연구에 정통한 연세대 임용기 교수를 찾아가 물었더니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서 없으면 알아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중앙도서관으로 이동해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큰사전' '조선말대사전' '한국어대사전' '토박이말쓰임사전'을 뒤졌으나 '간추리다'의 뜻 외엔 알 수 없었다. 1957년과 58년에 각각 출판된 '큰국어사전'과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지니 '간추리다'가 아예 없었다. 적어도 58년까지는 '간추리다'가 표준어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경북방언사전'을 찾아보니 '간주리' '간지리미' '간조로미' '간주루미'라는 단어 모두 '가지런히'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현재 표준어 '간추리다'의 뜻과 상통했다.

국립국어원에 다시 전화를 거니 "방언에서 표준어로 인정된 사례 중 '간추리다'가 없다"고 했다. 국립국어원에 관련 자료가 없다면 표준어 인정과정에서 공백이 발생했다는 건데, 이 공백을 설명하려면 또 자료가 필요한 순환논리의 오류가 발생했다. 경북 울진 출신인 어머니와 대구 출신 친구와 통화했으나 역시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정승철 서울대 교수에게 문의하려고 서울대 국문과에 전화하니, 정 교수의 이메일 주소만 얻을 수 있었다.

교보문고 로 옮겨 '경남방언연구' '경북동남부방언사전' '국어의 고수' '말찾아빛따라' '우리말 깨달음사전' '우리말잡학사전' 등 10여권의 우리말 관련 서적을 뒤졌으나 역시 '간추리다' 관련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 검색욕구가 끝없이 분출했다.

KBS 한국어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문의하니 유지철 아나운서는 "'간추리다'는 경상도 방언이었는데 1958년에 표준어로 등재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경위는 알지 못했다. 결국 마감시각까지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인터넷 검색결과

: '간추린…' 참고서 시리즈를 히트시킨 김성재 일지사 사장(2005년 작고)이 1956년 국어사전 교열작업을 하면서 집필진 몰래 '간추리다'를 사전에 끼워넣으면서 표준어가 됐다.(장진한 저 '한국인이면 반드시 알아야 할 신문 속 언어지식' 중)


②비틀스가 우드스탁에 서지 않은 이유


(이승현 인턴기자·서울대 정치학과 4)

비틀스 멤버 이름도 다 모르는 데다가 우드스탁이 무엇인지 모르는 내게 이 과제는 너무 어려웠다. 우선 교보문고 에 가서 '록을 노크하다'와 '대중음악사전', '365일 팝 음악사'를 통해서 비틀스 멤버들의 역할과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개요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비틀스나 우드스탁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는 "마약 문제 때문에 비틀스가 가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음악 서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목마른 영혼의 외침 존 레논'이란 책에서 1960년대 비틀스의 상황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앱스타인의 사망 이후 멤버 간 불화가 깊어졌고 존 레넌은 1969년 오노 요코와 함께 '플라스틱 오노밴드'를 결성했다. 69년 9월 이후로 비틀스는 함께 음악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드스탁 관련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정황상 비틀스가 왜 우드스탁에 서지 않았는지 추측만 가능했다. 멤버 간 불화가 심했고 존 레넌은 따로 활동했으며 마약전과자여서 미국 에 가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정도였다.

▶인터넷 검색결과:

두 가지 설이 있다. 존 레넌이 "비틀스가 우드스탁에 서려면 플라스틱 오노밴드에도 무대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해서 무산됐다는 설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존 레넌의 입국을 불허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woodstockstories.com)


③세종대왕이 앓은 질병


(김정인 인턴기자·고려대 경영학과 4)

교보문고 로 향해 '인문·역사·종교' 구역으로 갔다. 세종대왕과 관련된 책은 매우 많았지만 대부분 그의 업적과 관련된 책이었다. 한의학 서적들을 뒤져 조선시대 왕들이 앓은 병을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한의학과에 다니는 고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하니 친구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찾아보라고 권했다. 친구는 마침 지난 학기에 조선 왕들의 질병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영조와 정조를 맡았기에 세종의 질병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서점 직원에게 조선왕조실록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직원이 "검색해 드릴게요" 하며 컴퓨터로 향했다. 나는 점원의 친절을 극구 사양하며 서점을 나왔다.

고려대 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한의대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세종의 질병을 연구한 동료학생이 자료를 모두 교수에게 제출했고 교수는 현재 미국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 자료를 받으려면 이메일로 받아야 해서 포기했다.

고려대 도서관 3층에 가서 조선시대 관련 서적을 찾기 시작했다. '세종실록'을 따로 정리해 뒀으나 서가엔 총 25권 중 7권밖에 꽂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책들을 뒤졌다. '세종, 그가 바로 조선이다' '조선시대 왕들은 어떻게 병을 고쳤을까' '나는 조선이다' '조선의 마에스트로 대왕세종'이었다. 이 책들에서 비로소 나에게 필요한 자료들을 입수할 수 있었다.(총 3시간14분 소요)

▶인터넷 검색결과:

세종은 당뇨·풍질·부종·각기병·임질·등창·수전증·안질 등을 앓았다.(다음 블로그)


④'노털'의 어원


(김희선 인턴기자·고려대 경제학과 4)

국어 궁금증을 묻는 국립국어원 '가나다 전화'에 전화해 질문하니 "'나이 든 사람 중에서도 남자'를 주로 뜻하는데 표준어가 아니며 어원이 불분명하다"는 대답을 얻었다.

교보문고 로 이동해 국어사전을 뒤졌으나 '노털'이란 단어가 없었다. 민중서림 편집부에 전화해 사전을 담당하는 구명수 편집위원께 문의하니 자료를 찾아봐주겠다고 했다. 친구와 어머니, 지도교수께 각각 전화를 걸었다. 친구와 어머니는 "노인을 뜻하는 말 아니냐"고만 대답했다.

20분 만에 민중서림에서 전화가 왔다. 대국어사전 1961년 초판에서 찾았다며 "'노털'은 틀린 말이고 표준어는 '노틀'인데 어원은 중국어 '라오투어'"라고 했다. 평안북도 방언 중에도 늙은이를 뜻하는 '노툴'과 '노투디'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확인을 위해 고려대 국문과에 전화해 김양진 박사를 소개받았다. 김 박사는 "근대 중국어에 노인을 뜻하는 '노투얼(老頭兒)'이란 단어가 있는데 이것이 만주 등지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총 1시간30분 소요)

▶인터넷 검색결과:

'노털'은 '노틀'의 잘못. '노틀'은 '노인'을 뜻하는 중국어 '라오터울(老頭兒)'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네이버 지식인)


⑤광화문에서 일산호수공원 가는 법


(함선유 인턴기자·이화여대 소비자학과 졸업)

일산에 사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물으니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1000번, 2000번, 9714번, 1100번 버스를 타고 일산동구청에 내려서 일산MBC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고 알려줬다. 이 코스를 직접 가보며 확인했다.

동화면세점 앞 정류장을 찾는 데 오히려 시간이 걸렸다. 면세점 앞에는 정작 정류장이 없었고 대로변에 '광화문빌딩'이라는 이름의 정류장이 있었다. 1000번 버스를 타고 일산동구청에서 내리자 정면에 'MBC·호수공원' 방면을 가리키는 교통표지판이 있어 쉽게 찾았다. 올 때 버스 안에서 지하철 마두역을 봤으므로 그곳까지 걸었다. 마두역에서 지하철로 광화문까지 이동했다. 디지털 기기가 없어 아쉬웠던 것은 스마트폰 알람이 없어 버스에서 졸 수 없었고, 스마트폰 앱으로 환승하기 가장 빠른 지하철 출입문을 알 수 없었던 정도였다. 과제를 마치고 나서 알게 된 것은 호수공원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마두역이 아니라 정발산역이라는 사실이다. 마두역보다 400m나 가까웠다.(총 소요시간 2시간44분)

▶인터넷 검색결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마두역 이동, 마두역에서 88번버스 타고 대우·삼성오피스텔 정류장 하차.(네이버 빠른길 찾기)

지난 18일 미국 의 인터넷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가 미국 의회의 온라인도용방지법안(SOPA)과 지식재산권보호법안(PIPA)에 반대하는 뜻으로 24시간 동안 사이트를 폐쇄했다. 그러자 미국 고교생들이 트위터에 "위키피디아가 없으면 숙제를 어떻게 하지?"라는 글을 쏟아냈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위키피디아 없이 생존하는 법'이란 기사에서 "첫째, 다른 사이트를 뒤져라. 둘째, 백과사전을 펼쳐라. 셋째, '도서관'이라는 곳에 가봐라. 넷째, 잡다한 이야기를 알고 싶은 욕구를 참아라. 다섯째, 할아버지에게 전화하라"고 썼다.

세계에서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 에서 만약 인터넷 연결이 끊기거나 포털사이트들이 일제히 서비스를 중단하면 일대 혼란이 올 것이다. 인턴기자들이 수행한 '아날로그식 정보검색'은 인터넷의 유용성을 입증하기도 했지만 인터넷이 부정확하거나 불충분한 정보를 양산하고 있음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