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칼럼

[국외] 포도, 8천 년 동안의 ‘금욕’으로 ‘약골’만

까만마구 2011. 2. 5. 00:08


농약 없인 못 살아…접붙이기와 꺾꽂이 증식 탓
유전자 칩 활용한 새로운 육종방법으로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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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는 인류가 가장 먼저 재배하기 시작한 작물의 하나다. 약 8000년 전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지금의 터키 자리에서 과수가 된 포도는 5000년 전쯤 서쪽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요르단 계곡, 이집트로 퍼졌고 이어 유럽, 호주, 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등지로 퍼졌다. 현재 800만㏊에서 수천 품종의 포도가 재배되고 있고 포도주의 세계 시장은 2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처럼 포도를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품종으로 개발한 포도 재배업계의 고민은 놀랍게도 ‘새로운 포도’가 없다는 것이다. 적포도, 흰포도, 포도주용 포도, 과일용 포도 등 포도에 품종은 많아 보이지만 유전적으로는 거의 단일한 형질이어서 병충해와의 싸움이 큰 문제다.
 

75%가 부모와 자식 사이인 1촌 관계
 
img_04.jpg미국에서는 곰팡이를 죽이는 농약의 70%가 포도밭에 뿌려지고 있고, 프랑스에서도 포도농원은 농지의 3%를 차지하면서도 농약의 20%를 사용한다. 숀 마일즈 미국 코넬대 유전학자를 포함한 연구진은 이런 문제를 유전자 칩을 활용한 새로운 육종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미 국립과학원 회보(PNAS)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진이 미국 농무부가 보관하고 있는 약 1000품종의 포도 샘플의 게놈(유전체)을 조사한 결과 75%가 부모와 자식 사이인 1촌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테면  적포도인 메를로 품종은 카베르네 프랑과 근친인데, 그 자손이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의 또 다른 부모는 백포도 품종인 소비뇽 블랑인데, 이는 트라미너의 자손이고, 트라미너는 샤르도네의 양친인 피노누아의 부모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몇 가지 우수한 포도 품종이 나온 뒤로는 이들 사이의 한정된 교배만 이뤄졌을 뿐 수천 년 동안 새로운 육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우수 형질을 그대로 타고난 복제품을 양산하기 위해 접붙이기와 꺾꽂이 방식으로 포도를 증식했지, 유성생식 곧 섹스를 통한 자연적인 유전자 섞기가 벌어지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유성생식은 암수의 유전자를 카드 패 섞듯 무작위로 섞는 과정을 거치며 이를 통해 병충해 내성 등 새로운 형질의 진화를 재촉한다. 그러나 포도는 지난 8000년 동안 부자연스런 ‘금욕’ 과정에서 농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허약체질이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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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시간 안에 병충해 내성 포도 생산 가능”
 
이처럼 포도 농가가 엘리트 품종에 집착한 데는 와인 소비자가 독특한 향취가 있는 특정 품종에 대한 취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배경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포도 재배지역에서 특정 품종 이외의 다른 포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포도농장의 90% 이상이 유전적으로 동일한 복제물을 재배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지난 수천 년 동안의 육종은 가능한 유전적 조합의 일부만을 탐색했다”며 “유전자 마커를 이용한 육종을 통해 빠른 시간 안에 병충해 내성 포도를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포도가 속한 속에는 60가지 종이 있는 등 포도 자체의 유전다양성은 풍부한 편이다. 문제는 포도의 씨앗이 싹을 터 포도를 열기까지 약 3년이 걸리는 등 유성생식 방식의 육종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유전자 칩을 이용해 이를 대폭 단축시켰다. 연구진은 1000여 포도 품종의 게놈 지도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포도의 산도, 당도, 병충해 내성 등의 형질을 가리키는 유전자 마커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유성생식을 통해 얻은 포도가 열매를 맺기까지 기다릴 것 없이 씨앗이 싹을 틔우면, 바로 유전자 칩을 이용해 원하는 형질이 들어있는지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