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친환경)

흔들리는 유기농업의 정체성

까만마구 2016. 8. 7. 20:49



흔들리는 유기농업의 정체성

- 그 원인과 대책

 

글 윤병선 (건국대 교수, 경제학)

 

 

“농약은 과학이다”라는 문구에 이어 “유전자변형식품(GMO)이 친환경적”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안전성이 의심되는 이른바 ‘짝퉁’의 등장으로 유기농산물에 대한 불신도 높아지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수입 유기가공식품의 동등성 인정 문제까지 나오고 있고, 농약이나 비료 등을 적정하게 관리하면서 농산물을 재배한다는 취지의 GAP(Good Agricultural Practice, 적정농업규범) 농산물이 우수농산물로 잘못 인식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친환경농산물(유기, 무농약, 저농약)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진행되고 있다. 생산에서부터 가공, 유통, 소비 모든 부분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친환경 유기농업인가?

 

유기농업은 ‘산업적 농업(industrial agriculture)’의 대안으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산업적 농업’보다 훨씬 앞서서 존재했던 ‘유기농업’이 다시 ‘산업적 농업’의 대안으로 거론된 이유는 ‘산업적 농업’이 가져온 폐해의 심각성에 기인한다. ‘산업적 농업’이란 한마디로 농자재에서부터 생산, 유통 과정이 자본의 지배하에 종속된 농업이다. 자본이란 기본 적으로 ‘관계의 분절’을 통해 자신의 시장을 확대함으로써 가치를 증식하는 운동체라 할 수 있다. 산업적 농업은 농사의 시작이면서 끝이었던 종자까지도 자신의 영역으로 가져갔고, 물적 순환 과정을 통해 조달되었던 퇴비도 화학업체에서 생산한 비료로 대체되었다. 이른바 녹색혁명의 산물인 다수확 품종을 재배하기 위해 농약회사가 제공하는 살충제와 제초제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가 되었다. 농사가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종자뿐 아니라 농약, 비료, 기계 등 많은 농자재를 외부 자원에 의존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버렸다.

 

또한 외부 자재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다품종 소량생산은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바꿔야만 했다. 다품종 소량생산은 지역 내 자급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지만, 대규모 단일경작은 지역의 시장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유통자본의 개입이 없이는 판로 확보도 어렵게 되었다. 더욱이 과거에 농민 생산의 연장에서 이루어졌던 농산물 가공도 가공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처럼 자본이 “종자에서 식탁까지” 전 과정을 장악하게 되면서 농민들조차 먹거리 구매자가 되어 어디에서 어떻게 원료가 만들어지고 가공되는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경제 금융화가 지구온난화, 에너지 위기와 결합되면서 농업 생산과 관련된 권력의 집중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구적 규모로 일어나는 자본의 농업 지배 강화는 생태적 문제를 야기하고, 대규모 단작을 중심으로 하는 공장식 영농으로 인해 농약의 남용을 가져오며, 농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협동체를 위협하고, 작물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농촌사회의 불평등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안전성이 의심되는 먹거리가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잔류 농약이나 식품첨가물로 오염된 먹거리가 대량으로 유통되게 함으로써 먹거리 불안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산업적 농업’은 환경적으로 균형 잡힌 영농체계를 무너뜨리고, 유전자원의 다양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다량 투입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고, 이로 인해 농촌 생태 자체가 황폐화되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식탁의 안전도 훼손시킨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자연과 맺어온 공동체적 관계는 근대 이후 점차 해체되었으며, 그 자리를 자본제 상품관계가 대신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를 소외시키면서 지속가능성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공동체적 관계는 단절되고 왜곡되어 갔다. 유기농업운동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기의존(self- reliance) 구조를 복원하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적 농업’은 자본집약적 농업, 대규 모성, 고도의 기계화, 단작 영농,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화학비료·농약· 살충제의 광범한 사용, 집약 축산 등을 특징으로 하는 농업인 데 반해, 대안농업으로서의 유기농업은 지역성과 소규모성, 합성물질 투입재의 사용 회피, 지역자원의 순환이용 등을 위주로 하는 농업이라 할 수 있다.

 

유기농업은 물, 흙, 공기 등 무생물의 자연과 동식물, 그리고 인간 자신의 건강을 보호하고 보전하는 것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지속가능성이라 하는 합리적 관리의 생산방식과 과정을 통해 환경과 자연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건강한 품질의 최종생산물을 인간에게 공급하고자 한다. 아울러 유기농업은 인간과 자연, 생태계가 균형을 이루면서 자원의 순환고리를 유지하는 것을 지향하는 농업이므로 유기농업의 (상대적) 환경친화성은 ‘산업적 농업’과 구별되는 가장 기본적인 특성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산업적 농업’은 대체로 대규모 농지에서 대형 농기계와 기술집약적 시설 등 고정자산을 사용하여 대량으로 농산물을 생산, 가공, 공급하는 포디즘적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를 중시하는 데 비해 유기농업은 다품목을 생산, 공급하기 때문에 다각화에 기반을 둔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를 추구한다. 이에 따라 유기농업은 지역 여건에 따라 경종농업과 원예, 축산이 각각 조사료와 천연 유기질 비료 등과 같은 물질을 매개로 하는 연계를 지향하며, 이를 통해 외부로부터의 물질 공급과 외부로의 부산물 배출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지역 내 순환을 도모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국 친환경 유기농업의 성장과 위기

 

한국의 유기농업운동은 1970년대 중반부터 정농회와 가톨릭농민회 등이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다. 최초의 유기농업 생산자단체라 할 수 있는 정농회가 1976년에 설립된 데 이어 1978년에 한국유기농업협회가 설립되었고, 1980년대 초반에는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농’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서 농업과 농촌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해 보려는 움직임이 태동했다.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은 소비자의 요구나 특화된 생산물을 생산하여 판매하기 위한 시도가 아닌, 농업의 의미를 새롭게 보고 농업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는 농민들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녹색혁명의 폐해를 몸소 체험하고 자주적으로 유기농업을 실천해온 생산자들은 유기농업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직접 알 리는 교육을 통해 유기농산물 직거래사업을 전개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살림과 가톨릭농민회의 생명공동체운동 등을 시발로 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은 유기농업 확산에 큰 힘이 되었다. 생협을 통한 직거래사업은 정농회, 한국유기농업협회, 한국자연농업협회 등 유기농업 생산자단체 회원을 비롯해 농민운동에서 시작된 한살림, 여성운동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생협, 노동운동에서 지역운동으로 전환한 활동가들이 주도한 지역생협 등 다양한 운동 주체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1994년 11월에는 유기농업생산자 단체와 소비자단체가 모여 ‘환경보전형 농업 생산소비단체협의회’를 구성했으며, 1998년 친환경농업육성법 제정 이후 친환경농업 육성 예산이 늘어나고 2002년 지자체선거를 기점으로 지자체별 친환경농업 육성 정책이 본격 도입되면서 친환경농업이 양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정부가 친환경 농업육성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유기농 투입재인 토양개량제와 작물보호제 등 외부의 대체유기농자재에 의존하는 시스템이 고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인증 자체에 치중하다보니 정부의 <목록공시>에 등록된 고가의 자재를 구입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더욱이 정부가 친환경농업육성정책을 추진하면서 ‘산업적 농업’에 적용되는 생산력주의와 경쟁력주의에 입각해 양적 지표의 성장에만 몰두했고, 친환경농업 관련 예산도 친환경 농자재 지원에 집중되었다. 농업 생산의 물적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유기적 시스템’ 구축이라는 과정에 대한 고민보다는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결과만이 중시되는 전혀 유기적이지 못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 인증에 중심을 두고, 농자재 지원에 예산이 집중되는 속에서 유기농업이 ‘유기적인 농업’이 아닌 ‘유기질을 활용한 농업’으로 정착되어 버린 것이다.

 

그동안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해 왔던 친환경농산물의 재배 면적은 최근 들어 정체 내지는 감소를 보이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전체 재배 면적은 2009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2013년에는 전년대비 14%나 감소했다. 특히 저농약 재배 면적은 2008년을 정점으로 크게 감소하고 있는데, 지난 13년간 연평균 28%의 증가율을 기록했으나, 최근 3년간은 연평균 36%씩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2013년에는 전년대비 40%나 감소했다. 무농약 재배 면적은 지난 13년 동안 연평균 44%씩 증가했지만, 2012년 을 정점으로 이듬해에는 3% 감소했다. 유기 재배 면적도 지난 13년 동안 연평균 39%씩 증가했지만, 2013년에는 전년대비 17% 감소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친환경농산물 재배 면적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저농약 인증 폐지에 따른 농가의 대응이 무농약이나 유기 재배보다는 GAP나 관행 재배로의 전환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 친환경농산물에서 30% 가까이 차지하는 데다 저농약 비율이 79%나 되는 과실류의 경우 무농약 이상의 재배가 어렵기 때문에 저농약에서 무농약으로 전환할 농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한편, 최근에는 친환경농산물의 양적 성장과 규모 확대에 따른 새로운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초창기와는 달리 유기농업이 농민들의 자각과 각성보다는 정부의 친환경농업 육성 정책과 함께 새로운 소득 모형으로 자리 잡으면서 본래의 운동성도 희박해지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유기농업이 기존의 관행농법을 대체한다는 좁은 개념을 넘어서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환경과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살리는 농업구조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이라는 측면이 보다 깊게 고려되어야 할 시점이다. 더욱이 현재 친환경농산물 유통구조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형태는 점차 줄어들고 백화점이나 전문유기농 매장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으며, 상품화의 논리가 너무 깊숙이 침투되고 있다. 과거에는 상당 부분 생협이나 직거래 등을 통해서 유통되었으나 최근 들어 대형유통업체나 일반소 매점 등을 통한 유통 비중이 이를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신유통 연구원의 조사결과(2012년 기준)에 따르면 생협과 직거래의 비중은 34.5%인 데 반해, 대형유통업체 27.7%, 친환경전문점 6.9%, 일반소매점이 5.9%에 달하고 있다. 일반 관행 유통이 친환경농산물 유통에 개입함으로써 친 환경농산물의 판로를 확대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대안농업으로서의 유기농업이 관행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생태와 대안성에서 시작된 친환경 유기농업이 농업 위기에 대한 농가의 생존전략 차원으로만 축소되어 인식되는 현실도 존재하고 있다. 망가진 땅과 사람의 관계를 되살리는 ‘과정을 조직하는’ 운동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수익만을 쫓는 생산자와 먹거리의 안전만을 찾는 소비자들을 양산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면서 유기농업이 본래 갖고 있는 생태적 의미나 사회운동으로서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또한 ‘유기농업의 세계화’ 경향과 맞물려서 유기농산물의 수입물량도 급증하고 있다. 녹색혁명에 기반을 둔 ‘산업적 농업’의 대안으로 모색된 친환경 유기농업이 과연 그 기본 원칙과 가치, 이념에 따라 발전하여 왔는지, 미래농업으로서의 가능성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적 논의가 필요하다.

 

친환경 유기농업의 관행화

 

유기농업에 있어서 ‘관행화’라는 표현은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유기채소 산업에 자본이 침투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벅크 등이 처음 사용했다. 농업 관련 자본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유기농업의 특성을 다시 만들어 내는 방법”에 성공하면서 유기농업운동의 본래 정신인 생태적 혹은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고 위축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기농업의 관행화는 획일적인 유기농산물 기준이 제정되면서 급격히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농업 관련 기업은 획일적 기준에 맞춘 표준화된 생산을 통해 높은 가격의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유기농업도 ‘산업 적 농업’과 똑같이 외부 투입재에 의존하게 되었다.

 

유기농업의 관행화는 ‘산업적 농업’의 특징이 유기농업의 각 부문에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구체적인 징표로는 대규모 기업농 혹은 중간 상인이 성장하면서 생산과 유통이 이들에게 집중되는 경향, 외부에서 생산된 공장식·에너지집약적 투입재의 대량투입, 직거래와 같은 비시장적 방식에 의한 마케팅(non-market marketing)보다는 대중 지향형 마케팅에 의존하는 경향, 유기농업의 전통적 가치나 이념보다는 자본주의적 이윤지향형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소규모 유기농가가 규모화된 농가로 대체(퇴출)되거나, 유기농업의 주체가 가족농에서 기업농으로 대체되고, 생산자-소비자 간의 직접적 관계가 시장을 통한 단절된 관계로 대체되고, 다품목 생산이 단작으로 대체되는 것도 관행화의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즉, 농기업의 지배하에 있는 유기농업은 ‘산업적 농업’에 사용되는 투입재와 종류만 다른 시스템에 불과하게 되었고, ‘유기농’이라는 라벨도 여전히 에너지 집약적이고 대규모 단작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전혀 유기적이지 않으면서 이를 이윤 추구 수단으로 활용하는 ‘기업의 기회주의적 녹색화’가 진행되었다.

 

‘산업적 농업’과 유기농업은 단순히 영농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기농업은 ‘산업적 농업’을 지탱하는 사회·경제체제와 물질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응하는 “특별한 사회구조 및 특별한 도덕적·인지적 신념들”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대안적 농식품체계는 단순히 농산물 체계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대안 사회를 추구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유기농업이 대안적 농업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환경 친화적인 농업 기술, 자연과 인간, 도시와 농촌, 생산과 소비의 유기적 결합을 매개로 하는 사회 체계의 변화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기농업운동은 지역별 환경요인을 고려해 생산 규모를 조정하고, 자연순환 농법과 저투입 농법을 확산시키면서, 사회경제적·정책적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는 시스템으로 농촌 구조의 전환을 모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로의 회복과 농촌 지역의 인간권리 회복까지를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유기농업은 사회적 형평과 분배정의에도 부합하는 영농 형태라 할 수 있는데, 중소규모 가족농은 대기업농과 경쟁할 때 어쩔 수 없이 생산비와 마케팅 비용의 효율성에서 열세에 있지만, 한편으로 중소규모 유기농가도 중간수집상, 대형 가공업자, 도소매업자 등의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거래를 확보함으로써 부가가치의 외부 누출을 막고 품질과 식품 안전성, 가격, 시장안정성의 측면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유기농 생산농가의 조직화,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 강화, 그리고 농가가 속한 공동체 사회의 조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역성(locality)의 해체를 막고 반대로 이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엔이 2014년을 ‘세계가족농업의 해(2014 International Year of Family Farming)’ 로 정한 것은 친환경 유기농업과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현대의 먹거리 문제 해결에 있어 소규모 가족농업의 의의와 가치에 대한 평가에 기반하고 있다. 절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기아 인구 문제를 대규모 투자에 기반을 둔 농업개발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달성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아울러 소규모 가족농업은 스스로가 가진 자원을 집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의한 안전한 먹거리의 안정적인 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인식도 함께 있다. 실제로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해외농업개발투자는 농지 수탈의 또 다른 이름이었고, 농지 매입을 수반하는 투자는 지역사회를 송두리째 파괴해 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농업개발은 지역민들의 악화된 식량 사정을 개선하기 위한 착한 개발이 아니라 수출용 농작물이나 에탄올과 같은 농산연료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투자 대상지의 식량 확보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전개되는 대규모 집약농업은 땅이나, 물, 생물다양성 등 자연자원을 크게 훼손하였다. 전 세계에서 소규모 영농에 종사하고 있는 농가는 적어도 2억5천만 명이고, 경작 가능한 농지의 10%를 이용해 전 세계 식량생산량의 20%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소규모 경영은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에 고용흡수력이 높고, 여성이나 고령자처럼 취업 기회를 얻기 어려운 계층에게는 중요한 취업처이기도 하다. 나아가 소규모 경영은 농산가공이나 농민시장과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고용창출이 가능할 뿐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더욱이 ‘산업적 농업’, 기업 주도의 대규모 농업이 토지와 물, 생물다양성을 훼손하는 자원약탈형 농업이라면, 소규모 경영에 바탕을 두는 가족농업은 훼손된 농 農과 식食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복원하는 생명의 농업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살림의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유기농업이라 해도 땅과 인간, 농촌과 도시, 농과 식이 함께하는 순환 체계는 대규모 기업농에 의해서는 달성할 수 없다. ‘산업화된 유기농업’은 더 이상 순환의 체계를 만들어가는 ‘살림의 농업’이 아니라 ‘죽임의 농업’이다. 더욱이 ‘산업화된 유기농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세계화된 유기농업’으로 나아간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기가공식품의 동등성’ 협상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4년 1월부터 한국에서 유기식품 인증 기준이 시행되는 상황에서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국가들이 동 등성 협정을 요구함에 따라 현재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사회적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내에서 생산한 유기농산물의 사회적 비용은 ‘관행농산물’의 사회적 비용보다 훨씬 낮지만 해외에서 수입된 유기농산물의 사회적 비용은 ‘관행농산물’의 사회적 비용이 훨씬 높다. 이는 농자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순환체계에서 소비 부분이 전혀 순환적이지 않은 세계화된 유기농산물이 자유무역의 틀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또한, 소비자들이 유기농이라는 인증 라벨보다는 농민의 ‘얼굴’을 더욱 신뢰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만들어 놓은 인증 기준에 대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국가 등 3자 인증이 가져온 유기농업의 정체성 훼손, 생산자와 소비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순환의 농 식품체계의 훼손, 이 과정에서 유기농자재 생산에 대한 거대자본의 진출, 수입산 유기질 제재로 만든 유기농자재시장의 확대 등 일련의 과정들이 ‘산업적 유기농’이 유기농업을 지배하는 상황을 초래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친환경 유기농업의 수호

 

생산 농민들 또한 생산에서부터 소비에 이르는 과정에서 유기농업답지 않은 모습은 어떤 것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유기농업을 실천하면서 자원의 내부순환이 강화되었는지, 경종과 축산의 결합을 통해 자재의 외부 의존 정도가 감소되었는지, 지역 내 공동체성은 강화되었는지, 소비자와의 직거래가 증가했고 이를 통해 도시민(소비자)과의 교류 활동이 증가했는지 등을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혹은 일부 달성했다손 치더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또한 인증 중심의 친환경 유기농업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인증제도에 있어서도 국가인증을 대체할 수 있는 참여자인증시스템(PGS)이나 자주 인증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 생산자 스스로 생산을 자주적으로 점검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자주적인 점검을 생산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참여자인증시스템은 저농약 인증제의 신규 중단 및 전면 폐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지역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그 속에서 농업종사자들의 권리를 회복시키고, 소비자의 식탁에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자는 공생과 생명의 유기농업운동이 그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생산농민들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참여자인증시스템이나 자주인증시스템의 도입은 소비자를 단순하게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생산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유기만을 인증제로 하고 있는 가공식품 표시제도도 개선이 요구된다. 국내 친환경가공식품 중 무농약과 저농약 가공식품이 87%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기가공식품 인증제는 오히려 유기가공식품의 수입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그동안 친환경농업육성정책을 펼쳐온 정부로서도 현재의 정책기조가 과연 친환경농업의 육성에 걸맞는 것이었는지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자재 중심, 인증 중심, 결과 중심의 육성 정책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2013년 가을에 발표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은 ‘개별경영체의 육성’이라는 기존의 농정패러다임의 한계를 인식하고, ‘지역공동체의 육성’이라는 새로운 농정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업이 진정한 의미에서 ‘유기적’인 농업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에 바탕을 둔 유기농업이어야 하고, 지역공동체 내의 관계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유기적 관계의 복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농자재 중심 지원 정책에서 지역공동체를 바탕으로 순환적인 관계를 복원하는 지원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른바 지역 단위의 가족농들이 결합한 협동조합을 통해 경축순환을 촉진하는 지원 정책, 가족농들의 공동 작업을 촉진하고 더 많은 농민이 여기에 결합토록 하는 지원 정책, 생산된 친환경농산물의 직거래를 매개로 소비자와의 직간접적인 교류와 접촉을 촉진하는 지원 정책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지역순환경제 구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학교급식이나 공공급식, 가공 부문에 지역의 친환경농산물을 보다 많이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최근 학교급식에서 사용되는 친환경농산물의 비중이 급증한 것은 공적 영역에서의 정책적 결정사항이 농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농약’과 관련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필요하다. 농민들이나 국민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서는 안 된다. 친환경농업 예산이 2010년 5,518억 원에서 2014년 3,619억 원으로 대폭 삭감된 마당에 GAP농산물을 2017년까지 30%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선정되면서 정부가 친환경농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각종 지원정책이 GAP육성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명확한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농약이나 제초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라 하더라도, 이것이 그동안 진행되어 온 친환경농업 육성 정책으로부터의 후퇴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더욱이 기후변화가 심화되면서 친환경 영농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긍정적 외부효과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에서 벌어진 인증 부실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 친환경농업을 폄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인증제일주의, 결과제일주의, 효율제일주의가 초래한 해악에 대한 준엄한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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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친환경 유기농의 역설  (0) 201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