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에 싸인 유리온실 | ||||
첨단농업의 허와 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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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UR협상 타결로 WTO의 출범하면서 우리 농업은 본격적인 시장개방에 놓이게 된다. 시장개방시대 농업의 생존전략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선 이었다. 규모화 기계화 과학화라는 구호가 동원되며 우리 농업은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부터 맞춰진 시장 경쟁력 강화 농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시점에 최첨단 농업의 모델로 등장한 것이 유리온실사업이다. 비닐하우스도 흔치 않던 시절 최첨단 장비가 갖추어진 유리온실은 그야말로 미래의 농업을 바꿔줄 농업의 새로운 희망으로 포장되기에 충분했다. 1992년 7월 과학영농기술 보급과 수출을 목적으로 포철은 광양제철소에 3,600평 규모의 첨단유리온실을 준공 한다. 이 유리온실은 제철소의 폐열을 활용하며 온도·습도·급수·액비공급·농약분무 등 제반작업이 컴퓨터로 최적의 조건으로 유지되어 기존의 비닐하우스보다 우수한 농산물을 저렴하게 생산하게 된다고 했다. 이 유리온실에서 재배하는 고추는 127배, 토마토는 17배나 높은 생산성을 거둘 수 있다는 전망에, 농업의 미래 또한 밝게 점쳐졌다. 이렇게 포철은 유리온실 사업을 시작했으나 결국 유리온실에서 생산한 토마토와 카네이션을 대부분 국내시장에 유통하게 되고 수출은 생산량의 1%에도 머물지 못했으며, 품질이 떨어져 대부분 헐값에 팔게 되었다. 그리고 대기업의 농업생산에 진출해서 국내시장을 교란한다는 비난에 직면하여 2년 만에 농어촌진흥공사(현 농어촌공사)에 무상 양도하게 된다. 결국 대기업이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시작한 유리온실은 2년 만에 실패로 귀결 되었다. 농업생산이 자본과 첨단 과학기술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이후에 정부는 막대한 지원으로 유리온실은 강원도 평창에서 제주도까지 우후죽순으로 지어졌다. 김영삼 정부의 농어촌구조개선 대책으로 지원된 보조금과 융자금은 시장개방으로 갈 길을 잃은 농민들에게는 희망의 불빛이었다. 그러나 유리온실 사업이 실패한 사업으로 확인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0년대 유리온실 사업의 실패로 첨단 시설원예 정책은 한동안 중단됐다. 그러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수출농업단지 조성 등의 사업으로 다시 시작된다. 모든 것을 사업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는 농업도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국내시장뿐만 아니라 국제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래서 간척지에는 대규모 수출농업단지를 조성하고 한편에서는 식물공장을 건설하여 도심의 식물공장에서 생산한 신선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는 공상영화 같은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 시켰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유리온실은 대부분 실패했다. 그나마 성공하고 있는 곳은 부도난 온실을 싼값에 인수하고 인수자가 온실을 유지 보수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는 곳 뿐이다. 다시 말해 투자비가 적고 유지보수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어야 그나마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식물공장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어느 식물공장 대표는 그냥 놔두면 조만간 모두 망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자본과 최첨단 과학기술이 도입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것이 시장경제론자들의 신념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경제론 자들의 신념이 농업에서는 붕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농업생산은 자연을 다루고 생명을 다루는 산업이며 아울러 인간의 생존을 좌우하는 먹거리를 다루는 것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다. 최근 식물공장을 건설한 어느 대학에서는 미국의 예를 들며 건물 2층의 공장에서 생산한 신선한 농산물을 1층의 매장에 팔면 성공하지 않겠냐고 했다. 대형마트에서 원스톱 쇼핑에 익숙한 도시 소비자가 과연 도심의 채소매장을 찾을 것인가? 자연환경에서도 얼마든지 안전한 농산물이 생산되는데 공장에서 인위적인 환경 속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자가 먹을 것인가? 이들은 농산물을 둘러싼 사회적·정치적·정서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첨단 농업은 필요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첨단 시설과 농업은 새로운 수요를 발굴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기존 농민들과 경쟁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농업의 본질적 기능과 특성이 고려돼야 한다. 이번 호는 유리온실에서부터 식물공장까지 최첨단 과학기술과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첨단농업의 현실을 바라본다. 자본, 과학, 기술, 첨단, 6차 산업, 창조경제 온갖 미사여구로 표현되며 미래 농업의 상징들이 과연 위기의 한국농업에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편집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