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부여 박물관
시간의 여유는 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 했었다.
시간이 부족하기 보다는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하지만 잠깐 밖을 산책 하는것도 여러가지 부작용이 있다.
부여 기술센터 마무리 작업 직원들에게 맞겨 두고. 뜨거운 봄 바람, 흩날리는 꽃잎 떨어지는 사이를 지나 국립부여 박물관으로 향한다.
유명한 관광지라고 해도 근처에 있다면 다음에 갈 수 있다는 이유로 잘 가지 않게 된다. 부산에 있으면서 기능올림픽 부산 예선대회를 할 때 처음 해운대를 갔었다. 태종대와 기타 관광지 또한 해벽 등반을 하기 위해서 갔었지 관광이나 산책, 나들이로 간적은 거의 없다.
해운대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잘 이해 하지 못했었고 혼자 시간있으면 금정산 무명바위를, 몇몇이 시간을 만들면 부채바위를. 하루 종일 오르락 내리락. 설악산이나 멀리 북한산 인수봉 선인봉을 들락 거릴 시간은 있어도 부산 바닷가를 거닐 여유는 없었다. 취향과 생각. 그리고 가치관이 다른데 남들이 좋다고 해서 그 의견에 동조 해야 하는 이유가 없었기에. 관광지는 잘 가지 않는다.
밖에나가 여행을 할 때도 박물관이나 공원, 관광지는 잘 가지 않았다. 책이나 사진으로 볼수 있는 것에 빠듯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이들. 특히 공무원이나 외국에 자주 나가기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 할때는 이네들의 요구로 박물관과 유명 관광지를 가게 된다. 사람많고 줄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씷어도. 왜? 수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다.
근래 가능한 박물관. 혹은 관광지를 갈 수 있다면 가려고 노력한다. 부여 작은 지방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하지 않지만 생각치도 않았던 것에 눈길이 가고 가슴속으로 깊이 들어 오는 경우가 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발견된 부러진 손목,
작은 토기 조각이다.
무엇을 쥐고 있는것 인지. 누구의 손인지 알 수 없으나.
무언가 잡고 있는 작은 손에서 따스함을 느낀다.
너도 좌익이니?
무거운 비석을 잃어 버리고 고개를 가우뚱 거리는 거북 모습에서. 뭐하러 왔는가 묻고 있다.
직원들에게 일 시켜 놓고 땡땡이 치는 것을 알고 있는듯 씩 웃으면서. 그래 가끔은 농땡이도 쳐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부여 인근에서 발견된 유물을 이용한 '국립부여박물관' 작은 토기인형으로 그 당시 생활상을 재현해 놓고 있다.
그릇. 불에 그을린 흙냄새가 난다.
작은 조각, 퍼즐을 끼워 맞추는 이들의 손길. 과거, 한 사람이 만들고 그것을 불에 구워 사용하다 한 사람 옆에 같이 잠들어 있던것을 또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밖으로 나와 조각을 이어 붙여 여기에 놓여 있다. 긴 세월. 그리고 이 토기를 만졌던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무엇을 담았을까? 곡물을. 아니면 물과 음식을. 마주 잡은 손길로 따스함을 담아 놓았던 토기. 크기와 생김에 따라 다른 이야기들을 긴시간 동안 하고 있다.
죽간 배움이 짧아 몇 글자만 읽을 수 있다.
남겨 놓고 싶은말 많았을탠대 나무 한조각에다 적어 놓기 위해 줄이고 또 줄여 기록한다. 숫자와 몇 가지
누구를 위한 기록이었을까? 몇백년 세월이 지나 봄바람에 잠깐 나온 농사꾼이 이것을 볼 것이라 생각을 했을까?.
부러진 세월의 흔적들.
한때 조각가가 되고 싶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칼을 능숙하게 다룬다고 주변에서 부추켜 몇가지 목형을 깍고 다듬고. 했지만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것에 그냥 취미로. 가끔 칼가지고 놀기 위한 소일거리 처럼 변해 버렸지만. 조각은 큰 형태를 하나하나 깍아 나가면서 생명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고 흙은 하나씩 붙여 가면서 생명을 연결하는 것이라 배웠다. 같은 조각이라 하지만 깍아 나가는것과 붙여 나가는 것은 개념과 철학이 다르다. 깍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고. 붙이다 보면 스스로 그 속에 파 뭍혀 버리는 상황을 여러번 격으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타인을 만족케하고. 먼 훗날 수 많은 사람들을 만족하게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향로.
세발 까마귀. 혹은 봉황.
작은선 작은 인물들. 하나하나 예술인데 모두 모여 커다란 이야기를 남겨 놓고 있다.
박물관을 가서도 설명은 잘 읽지 않는다.
남들이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것을 읽고 전시품을 보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사전 지식없이 하나하나 볼 수 있다는 것은.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몇백년 후 내가 여기 있었던 작은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까?. 그것이 박물관에 있을까? 아니면 폐기물 더미 속에 있을까?.
과거가 어떻게 됬든. 미래가 어떻게 찾아오던. 현실에 만족하고. 현실을 노력하고. 현실에서 즐길 수 있는 삶을 살수 있기를..